위창 오세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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■ 작품명 : 와당문 10폭 병풍
■ 작가명 : 위창 오세창
■ 작품크기 : (33cm x 127cm) x10 , 총438cm x 190cm(H)
■ 작품재료 : 종이에 먹
| 작가약력 |
1864 서울 출생, 호는 위창, 1953년 별세
오세창은 20세에 역관이 되었다가 1896년 박문국 주사로 <한성순보> 기자를 겸하였다.
이후 1894년 군국기무처 총재비서관이 되었고, 이후 농상공부 참서관, 통신원 국장 등을 역임하였다.
1920년 개화당사건으로 일본에 망명하던 중에 손병희이 권유로 천도교에 입교하였고, 1906년 귀국 후 <만세보>, <대한민보> 사장을 역임하였다.
1919년 기미독립운동 당시에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다 3년간 옥고를 치뤘다.
1918년 근대적 미술가 단체의 효시인 서화협회가 결성될 때 13인의 발기인으로 참가하였으며, 민족서화계의 정신적 지도자였다.
오세창은 전서와 예서를 즐겨 썼다.
특히 전서와 예서를 혼합한 글씨나 와당, 고전, 갑골문 형태의 구성적인 작품도 시도하여 독특한 경지를 이루었다.